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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마을 참사의 원인을 개인의 불행으로만 정리하는 것은 진상규명이 아니라 오래 미뤄 온 방치의 책임을 덮는 일이다광장

합동감식은 불씨의 경로를 밝혀도 오래 미뤄 온 재개발의 책임까지는 밝혀 주지 않는다.

모민철 필자2026년 10월 31일

소방 당국이 구룡마을 화재에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가 소강 상태 이후 1단계로 하향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시작된 불은 13시간 넘게 타올라 77가구 107명의 주민이 집을 잃었고, 경찰·소방·전기안전공사가 합동감식에 나선 상태입니다. 화재 진화 뒤 국토부가 이재민에게 LH 임대주택을 2년간 무상 제공하겠다고 발표했고, 서울시는 내년 예정대로 재개발 착공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소방이 밝힌 대응 단계는 불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일 뿐, 왜 그 불이 그 자리에서 그토록 오래 탔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합동감식이 밝혀낼 수 있는 것은 발화 지점과 화세의 확산 경로입니다. 그러나 감식 보고서는, 왜 화재 취약 건축물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식은 불씨의 궤적을 그리지만, 그 불씨가 피워진 시간의 깊이는 재지 않습니다.

이 참사의 시계는 27일 오후 3시 50분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서울시가 구룡마을 재개발 사업을 장기간 방치해왔다는 책임론이 나오는 순간, 시계는 이미 돌아가 있었습니다. 재개발이 미뤄지는 동안 관리 공백은 쌓였고, 그 공백 속에서 위험 등급의 주거지는 내버려졌습니다. 불이 난 순간이 참사가 아니라, 위험을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었던 시간 자체가 참사입니다.

화재 직후 오세훈이 긴급 회의를 열고 인력과 장비 총동원을 지시했고,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관계기관에 인명 구조와 진압 총력을 당부했으며, KT와 LG유플러스가 이재민 구호소에 생수와 와이파이를 보냈습니다. 국토부는 LH 임대주택 2년 무상 지원을 발표했습니다. 진화, 구호, 지원, 발표. 사후 대응은 빈틈없이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후행 조치가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왜 그 집들이 거기 있었습니까.

참사 뒤의 지시는 진화용일 수는 있어도 예방용이 될 수 없습니다. 화마가 지나간 뒤에 동원되는 인력과 장비, 무상 임대주택과 위로지원금은 잃어버린 주거를 보상할 수는 있어도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서울시가 화재 이후에도 내년 예정대로 재개발 착공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방치의 시간이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라, 통제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통보에 가깝습니다. 2년의 무상 임대가 끝난 뒤 이재민이 돌아갈 곳이 있으리라는 보장은 지금 어디에도 없습니다.

발화 원인 규명은 마땅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규명이 재개발을 미뤄온 시간만큼의 행정 책임 계산과 분리돼서는 안 됩니다. 합동감식이 불씨의 출처를 밝히는 순간, 방치의 책임은 뒤로 물러나 개인의 부주의라는 작은 결론 뒤에 숨을 위험입니다. 불이 꺼진 자리에서 계산해야 할 것은 불씨가 아니라 묵인된 시간입니다.

같은 위험 등급의 집들이 서울 어딘가에 여전히 서 있는 한, 이 참사는 과거형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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