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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시간을 정해 놓고도 한 시간씩 더 기다리게 하는 것은 환자의 시간표를 지키는 예약제가 아니라 대기 인원으로 진료실을 채우는 방식이다광장

예약 시간을 정해 놓고 환자를 기다리게 하는 한 그것은 예약제가 아니라 자리 확보다.

백영우 필자2026년 10월 26일

예약 시간을 정해 놓고도 한 시간씩 더 기다리게 하는 것은 시간표를 지키는 예약제가 아니라 대기 인원으로 진료실을 채우는 방식입니다. 병원이 특정 시간에 오라고 정해 놓고 정작 그 시간에 진료를 시작하지 않는 일이, 많은 병원에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환자는 예약 시간에 맞춰 병가를 내고 아이를 데리고 오고 회사를 나와 앉아 있지만, 병원은 그 대기 시간에 대해 어떤 보상도 하지 않습니다. 이 구조에서 예약제는 시간표가 아니라 환자를 미리 붙잡아 두는 자리 확보 수단으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환자의 대기 시간도 비용입니다. 병가를 내고 온 사람,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 회사를 나와 앉아 있는 사람의 시간을 병원은 무상으로 쓰고 있습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가 기다리는 동안 인건비도 임대료도 기회비용도 나오지 않습니다. 환자의 시간은 원가 계산에 아예 들어가지 않는 공짜 자원일 뿐입니다. 대기가 길어질수록 환자가 치르는 비용은 커지는데, 병원 쪽 비용은 조금도 늘지 않으니 기다림을 줄일 유인이 없습니다. 반면 환자가 예약 시간을 어기거나 예약 없이 오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린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약속을 어기는 쪽이 항상 같고, 비용을 내는 쪽은 항상 환자입니다.

착실한 구조입니다. 환자가 늦으면 벌금을 내고, 병원이 늦으면 환자가 기다립니다. 계약이라 부르기 어려운 이 비대칭은, 병원이 예약 시간을 어겨도 배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선명해집니다. 같은 약속을 어겨도 환자에게만 벌칙이 붙는다면, 위약금은 약속을 지키게 하는 장치가 아니라 한쪽의 손해를 예약이라는 이름으로 등록해 두는 일입니다.

대기가 길어지는 책임이 환자 몫만은 아닙니다. 진료 단위 시간을 짧게 잡아 예약을 몰아주는 운영 방식 자체가 대기 인원을 만든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의사에게 환자를 밀어 넣을수록 매출은 올라가지만, 단위 시간당 진료가 과밀해지면 지연은 필연입니다. 이 지연을 환자의 대기로 흡수하는 것이 지금 예약제의 작동 원리입니다. 병원은 초과 진료의 수익을 가져가고, 초과 대기의 비용은 환자가 떠안습니다.

예약제를 쓴다면 시간표를 지키는 것까지가 예약제입니다. 예약 간격을 실제 진료 시간에 맞추고, 대기가 길어지면 늦어진 이유와 순서를 알려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쪽이 그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약이 아니라 징발입니다. 시간표를 지킬 수 없는 병원이라면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시간을 환자에게 예약으로 팔지 말아야 합니다. 예약 시간은 병원이 정했고, 그 약속을 어기는 것도 병원이라면, 기다림의 이름은 예약제가 아니라 대기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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