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격과 부적격을 함께 달고 임명된 청장이 수사 기관의 중립을 지키기를 바라는 것은 국민에게 과도한 요구다광장
적격·부적격 병기에도 임명된 중수청장, 제도의 중립은 청장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가 결정한다.
김인환 필자2026년 10월 17일적격과 부적격을 한 몸에 달고 출발하는 수사기관이 있습니다. 김지용 초대 중수청장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적격과 부적격이 병기된 경과보고서가 채택됐고,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안을 재가해 정식 절차가 마무리됐습니다. 청문 결과에 양쪽 의견이 함께 실렸는데도 임명이 강행된 것입니다. 개청과 정상 가동으로 이어진 속도는 빠릅니다. 그러나 그 속도가 채운 자리에 신뢰가 들어설 틈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사가 아닙니다. 신뢰에 대한 포기 선언입니다. 적격·부적격 병기라는 결과는 후보자 평가가 갈렸다는 중립적 표현이 아닙니다. 수사기관의 수장을 뽑는 자리에서 검증이 끝나지 않았음을 스스로 확인하고도 밀어붙이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제도 위에 올라탔다는 뜻입니다. 김 청장이 취임 앞두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고 밝혔다는데, 중립을 스스로 선언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중립이 전제가 아니라 남겨진 과제라는 증거 아닙니까. 중립이 제도 안에 설계돼 있었다면 선언 따위는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한때 광장에서는 검찰 권력의 독주를 막겠다며 수사·기소 분리를 외쳤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 앉은 세력은 정작 수사를 쥐는 기관의 첫 문을 신뢰가 검증되지 않은 인물로 열었습니다. 광장에서는 견제가 정의였고, 권력 안에서는 장악이 안정이 됐습니다. 검수완박을 요구하던 목소리가 가장 컸던 세력이 스스로 만든 검찰 견제 장치를 신뢰받지 못하는 인물로 채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입니다. 새 기관의 독립성을 국민에게 보여줄 첫 사례가 청장 임명이었는데, 그 첫 관문에서 정치적 필요가 검증의 판정을 이겨 버린 것입니다. 첫 관문이 이미 그렇게 통과된 기관이 이후의 관문은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말입니다.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고 곧바로 임명안을 재가한 속도가 모든 절차를 지켰다는 증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절차는 형식적 통과였고, 결론만 미리 정해져 있었을 뿐입니다. 청문 보고서에 적격과 부적격이 나란히 올라간 시점에서 임명을 밀어붙인 것은, 제도의 출발점부터 신뢰보다 정치적 필요를 앞세우겠다는 선택이었습니다. 중수청의 성패가 청장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국민이 제도를 중립이라고 믿는지에 달려 있다면, 출범 첫 인사에서 그 믿음의 기준을 스스로 낮춘 제도는 이후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아도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적격·부적격이 병기된 채 임명된 수사기관이 내놓는 결론에, 피의자든 수사 대상이든 먼저 정치적이냐고 묻게 되는 셈입니다.
수사기관이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수사가 정치적 신호에 따라 시작되고 멈춘다는 의심이 한번 박히면, 그 다음 재판은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중수청의 첫 인사에서 만든 것은 제도가 아니라, 앞으로 매 사건마다 따라다닐 의심의 구조입니다. 출범 때 진 신뢰의 빚은, 어떤 재판부도 갚아주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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