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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물을 줄이면서 겉포장 모습만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원가를 반영한 값 매기기가 아니라 양을 비교할 권리를 가리는 일이다광장

양을 줄인 것 자체가 아니라 줄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게 겉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비교할 권리를 가린다.

한도현 필자2026년 10월 31일

포장은 그대로인데 내용물이 줄어든 제품을 들고 서서, 겉면에 쓰인 '새로워졌다'는 문구와 손에 느껴지는 무게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입니다. 가격은 유지한 채 용량을 줄이는 이른바 쉬링크플레이션이 최근 과자와 음료, 생활용품 등 여러 제품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원자재와 물류 비용이 올라 값 올림 대신 양 조절로 부담을 흡수했다는 업계 주장이 있지만, 문제는 양을 줄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용량이 줄었는데도 포장 크기와 디자인을 비슷하게 유지하면 진열대 앞에서 소비자는 변화를 알기 어렵습니다. 겉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포장을 다시 설계하려면 비용이 드는 데도 그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존 형태를 고집하는 까닭은, 소비자가 눈으로 용량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장 앞면에는 '새로워졌다'는 문구가 크게 붙지만 '이전보다 몇 그램 줄었다'는 안내는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 않습니까. 강조할 것과 숨길 것을 가리는 이 태도가 신뢰를 깨는 일입니다.

숨겨진 것, 그것은 한두 그램의 과자가 아니라 시장이 성립하기 위해 전제되는 비교의 권리입니다. 소비자가 같은 조건에서 제품을 비교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면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투명하게 알아야 하는데, 용량 변화를 숨긴 채 가격만 동결하면 소비자는 같은 값을 내고 덜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하게 됩니다. 이는 원가를 반영한 정직한 값 매기기가 아니라, 정보의 비대칭을 의도적으로 설계해 소비자의 판단 기반을 빼앗는 일인 셈입니다.

업계가 원가 상승을 이유로 양을 줄이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줄였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정당한 값 매기기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용량 변화의 명확한 안내와 단위가격, 즉 100그램당 값을 표기하는 제도를 확대해 소비자가 같은 조건에서 비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양을 줄여도 좋습니다. 다만 줄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마십시오. 줄인 것은 용량이고, 숨긴 것은 시장의 신뢰입니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소비자가 비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비교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시장의 자율을 거론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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