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원 자리에 AI를 앉혀 놓고 사람과 연결해 주지 않는 것은 비용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문을 줄이는 일이다광장
AI 상담 도입의 효율 논리는 사람 연결을 숨기는 설계 앞에서 소비자의 문제 해결 권리를 침식한다.
고객센터가 효율을 따지는 자리에서 걸러내기가 늘고 있습니다. 은행·카드사·통신사가 최근 몇 년 앞다투어 고객센터를 AI 상담으로 바꾸면서 단순 문의 응대 속도는 올랐지만, 정작 사람 상담원과 연결되는 길은 좁아졌습니다. 사업자는 24시간 응대와 인건비 절감으로 이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소비자는 AI에 발이 묶여 이튿날 다시 처음부터 전화를 걸어도 또 AI를 만나 사람과 연결되지 못합니다(파이낸셜뉴스, 10.29).
효율이라는 논리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건비 절감과 24시간 응대는 분명 AI 도입이 가져온 변화입니다. 그런데 절감된 비용이 요금 인하나 수수료 면제로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근거는 확인된 바 없고, 사업자의 효율이 소비자의 효율과 같은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전제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소비자에게 AI 상담이 효율적이려면 자기 문제가 빨리 풀려야 하는데, 풀리지 않은 채 정형화된 응답 사이를 맴도는 시간은 그 어떤 효율도 만들지 못합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체 제한, 요금 이의제기, 피해 구제처럼 개인의 구체적 사정이 얽힌 문의는 AI의 정형 응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하필 이런 문제가 소비자가 겪는 실질 피해와 직결된 영역이고, 거기서 AI는 답을 주지 못합니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고 같은 안내를 듣다 포기하는 소비자가 생겨나는 구조입니다. AI 상담의 한계는 특정 업종을 넘어 소비자 접점 전반에서 반복되는 현상입니다(일요서울i, 12.24).
문제는 AI 기술이 아니라 사람 연결을 숨기는 설계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상담 메뉴 깊숙이 사람 연결 버튼을 묻어 두고 대기시간을 이유로 AI에 머물게 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파이낸셜뉴스, 10.29). 이 설계의 본질은 소비자가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AI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만났을 때 시스템이 스스로 사람 상담원에게 넘기는 기준이 없다면, 그 AI는 해결 도구가 아니라 걸러내는 장치입니다. 사업자는 인건비를 줄였다고 말하겠지만, 소비자가 포기해서 생긴 절감은 절감이 아니라 문제를 무시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기준을 공개해야 합니다. AI가 일정 횟수 이상 같은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거나 소비자가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사람 상담원에게 넘어가는 규칙을 사업자가 정하고, 그 기준을 소비자에게 밝혀야 합니다. 상담원 연결 경로를 메뉴 첫 화면에 두는 일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 않는 이유가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선택이라면, 그 선택의 책임은 사업자가 져야 합니다. 소비자가 찾아와도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 신청처럼 훨씬 비싼 문을 두드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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