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표가 나왔는데도 교섭장을 비워 두는 것은 세를 아끼는 일이 아니라 시민의 발을 담보로 잡는 일이다광장
파업 경고가 나온 뒤의 침묵은 방치가 아니라 선택이며,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시민의 발이다.
파업표가 나왔는데도 교섭장을 비워 두는 것은 세를 아끼는 일이 아니라 시민의 발을 담보로 잡는 일입니다.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3곳이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진행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모두 안건을 가결했습니다 (아주경제, 11.6; 00news.co.kr, 11.6). 조합원 9000여 명이 속한 민주노총 계열 제1노조를 비롯해 제2노조, 제3노조가 가세했습니다 (동아일보, 11.5). 노사는 인력 감축과 신규 채용 규모를 두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며, 뉴스1 보도에 따르면 '인력 충원'을 놓고 노사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아주경제, 11.6; 뉴스1, 11.6). 안전과 서비스를 지탱할 사람의 수를 다투는 교섭이 빈자리 앞에서 진행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시끄러운 투표가 가장 조용한 교섭을 낳았습니다. 3개 노조가 연달아 찬성표를 던지는 동안 사측이 내놓은 것은 실무자끼리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이 전부였습니다 (뉴스1, 11.6). 노조는 투표로써 의사를 분명히 했고, 사측은 침묵으로써 자세를 취했습니다. 한쪽은 표를 모았고, 다른 한쪽은 시간을 모았습니다. 표가 모일수록 파업의 압력은 커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시민의 불안은 쌓입니다. 이 두 곡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이달 말입니다. 구체적인 파업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노조별 일정 조율이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있는 만큼 남은 시간이 넉넉지 않습니다 (한국경제, 11.5; 헤럴드경제, 11.5).
참으로 부지런한 실무 접촉입니다. 의장석은 비워 둔 채 책상 아래에서만 손을 맞대고 있으니,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은 하면서 교섭의 결과는 내놓지 않는 일관된 자세입니다. 한국경제 보도에서 노조 측은 파업 전에 공사 및 서울시와 교섭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취지로 전했습니다 (한국경제, 11.5). 그 '있을 것'이라는 미래형이 현재진행형으로 바뀌지 않는 이유를 사측은 밝힌 적이 없습니다. 교섭을 서두르지 않는 침묵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그 선택이 만든 여유를 누리는 쪽은 협상 당사자이고, 그 선택이 만든 불안을 떠안는 쪽은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민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갈등이 서울지하철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철도노조와 서울교통공사노조가 공동투쟁 계획을 밝혔고, 연말 파업 전선이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00news.co.kr, 11.6; safetimes.co.kr, 11.5). 안전업무 공백과 인력 부족을 공통의 쟁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업장의 요구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safetimes.co.kr, 11.5). 철도와 도시철도가 한 체계로 묶인 지금은 한쪽이 멈춰도 다른 쪽이 대체수송의 여유를 내기 어렵다는 점도 짚혀 있습니다 (safetimes.co.kr, 11.5). 대체수송의 안전망이 좁아진 상황에서 교섭의 틈이 벌어지면, 그 틈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민의 일상입니다.
파업이 시작되기 전에 교섭 테이블을 복원하고, 인력 충원의 규모와 시간표를 시민 앞에 밝혀야 합니다. 인력 충원 문제는 안전과 직결된 사안이며, 미룰 수 있는 문건이 아닙니다. 쟁점의 규모가 확정된 숫자로 정리되면, 노조가 투표로 쌓은 압력도 실질적 교섭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숫자가 나오지 않는 교섭은 감정만 남기고, 감정만 남은 교섭은 파업표만 키웁니다. 교섭장이 빈 의자로 남는 하루가 길어질수록, 담보로 잡히는 것은 시민의 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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