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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채 세계 최저권, 가계부채는 세계 5위

류근웅류근웅 기자· 2026. 8. 9. PM 5:02:31· 수정 2026. 8. 9. PM 5:03:39

한국의 대차대조표는 지금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정부는 선진국 중 가장 가벼운 빚을 지고 있는데, 가계는 세계에서 손꼽히게 무거운 빚을 지고 있다. IMF가 5월 발표한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는 한국의 2026년 일반정부 총부채비율을 GDP 대비 54.4%로 전망했다. G20 선진국 평균 118.9%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반면 한국은행이 5월 19일 내놓은 1분기 가계신용 통계는 가계부채 잔액이 1993조1000억원으로 2002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찍었다고 밝혔다. 국가는 건전재정 모범생, 가계는 부채 상위권이라는 엇갈린 성적표다.

재정준칙 없이도 지켜낸 낮은 부채비율

IMF는 2021년 한국의 2026년 부채비율을 69.7%로 예측했지만, 최신 전망치는 54.4%로 15.3%포인트 낮아졌다. 순부채 기준으로 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한국의 순부채비율은 10.3%로 G20 평균 89.6%와 비교가 무색하다. 미국의 2026년 총부채비율은 125.8%, 프랑스와 영국도 2019년 대비 각각 20.2%포인트, 18.7%포인트 뛰었다. 법정 재정준칙조차 없는 나라가 이 정도 수치를 유지한 것은 정부 지출 확장에 제동을 걸어온 관성의 결과에 가깝다.

가계는 왜 거꾸로 가는가

같은 시기 가계 쪽 그래프는 반대로 움직였다. 1분기 가계신용은 전분기 대비 14조원 늘었고, 판매신용을 뺀 순수 가계대출도 1865조8000억원으로 12조9000억원 증가했다. 흐름을 만든 건 규제의 빈틈이다. 시중은행 가계대출은 2023년 1분기 이후 처음 감소했지만, 저축은행·상호금융·신협 등 비은행권 대출이 8조2000억원 늘며 그 자리를 메웠다. 여기에 코스피 6000선 돌파 국면에서 증권사 신용공여를 낀 '빚투'까지 겹쳤다. 규제가 강한 창구를 막으면 약한 창구로 돈이 옮겨가는, 전형적인 풍선효과다.

국제비교로 보면 순위는 내려가지만 구조는 그대로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90.7%로 44개국 중 5위였다. 스위스·호주·캐나다·네덜란드·뉴질랜드에 이어 OECD 상위권을 지킨다. '세계 1위'라는 통설과 달리 실제 순위는 5~6위지만, 전세보증금까지 부채로 잡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임차인이 돌려받을 권리인 전세보증금을 임대인의 부채로 계산하는 방식을 적용하면 GDP 대비 비율은 약 145%까지 뛰어 비교 대상국 중 최상위로 올라선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 기준을 바꾸면 순위가 아니라 체급 자체가 달라지는 구조다.

구분지표수치
정부부채2026년 총부채비율(IMF 전망)GDP 대비 54.4%
정부부채순부채비율GDP 대비 10.3%
가계부채1분기 가계신용 잔액(한국은행)1993조1000억원(역대 최대)
가계부채GDP 대비 비율(BIS, 지난해 3분기)90.7%(44개국 중 5위)

정책대출이라는 반론과 그 대가

정부 쪽 반론도 근거가 있다. 주택 관련 대출 증가분 중 상당 부분은 디딤돌·버팀목 같은 정책상품 감소폭 축소에서 나왔다는 게 통계상 확인된 대목이다. 서민·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려는 목적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 목적성 대출이 결과적으로 가계부채 총량 억제라는 다른 정책 목표와 충돌한다는 점이다. 규제로 은행 창구를 죄면서 정책보증으로 다른 창구를 열어주는 방식은 총량은 그대로 두고 경로만 바꾸는 셈이다.

낮은 국가부채가 가려온 것

정부의 낮은 부채비율은 그 자체로 정책 실패를 막아주는 방패가 아니다. 오히려 가계 부문이 짊어진 리스크를 국가 재정이 흡수할 여력이 남아 있다는 뜻에 가깝다. 가계신용이 8분기 연속 늘어나는 국면에서 비은행권으로의 쏠림과 전세라는 한국형 부채까지 감안하면, 재정건전성 지표 하나만으로 경제 전체가 안전하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다음 통계 발표에서 비은행권 증가세가 꺾이는지, 정책대출 비중이 다시 줄어드는지가 이 균형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가늠할 첫 신호가 될 것이다.


분석 근거: IMF Fiscal Monitor(2026년 5월), 한국은행 가계신용(2026년 1분기), 국제결제은행(BIS) 가계부채 통계, 금융위원회 가계대출 동향, 이투데이·뉴스에프엔 보도. 공개 데이터·보도에 근거한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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