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을 인내의 시간이라 부르는 것은 시장을 정상화하는 일이 아니라 정책의 책임을 국민의 견딤으로 바꿔치기하는 일이다광장
인내를 요구하는 쪽과 견뎌야 하는 쪽이 다를 때, '인내의 시간'은 약속이 아니라 책임의 유예가 된다.
송시옥 필자2026년 11월 1일가장 견디기 쉬운 것은 남의 인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서울 집값 하락을 전망하는 글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며 "자산시장 정상화를 향한 힘든 길에서 지금은 견디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조정을 정상화 과정으로 규정하고, 그 과정에 따르는 고통을 국민이 인내해야 할 시간으로 몰아간 발언입니다. 같은 시기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였다고 알려졌는데, 인내를 요구하는 쪽과 견뎌야 하는 쪽 사이의 온도차가 숫자로 겹쳐 나타난 셈입니다.
문제는 '인내'의 주체가 누구인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대출 이자를 갚는 가구, 이사 시기를 놓쳐 전월세 갱약을 앞둔 세입자, 내 집 마련 계획을 접은 청년. '견디라'는 한마디가 던져지는 순간 이 세 부류의 인내는 같은 단어 안에 갇히지만, 그 무게는 전혀 다릅니다. 매달 이자를 내느라 소비를 줄이는 가장에게 인내는 가계부 줄이기로, 직장을 옮기지 못하는 세입자에게는 이사 비용의 재정비로, 청년에게는 계획 자체의 폐기로 치환됩니다. 그 부담의 크기를 정책이 계량해 보인 적은 없습니다.
하락이 왜 필요한지, 어느 선까지 갈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그 과정에서 생길 타격을 줄이는 완충 장치도 없이 '인내'만 요구하는 말은 설명이 아니라 책임의 유예 청구입니다. "결국 알게 될 것"이라는 표현은 그런 점에서 더 위태롭습니다. 결국을 언제로 정했습니까. 알게 된다는 것이 고통의 끝을 뜻한다면, 그 끝을 판단할 지표는 무엇입니까. 목표선이 보이지 않는 인내는 시간이 아니라 공백입니다.
이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구두 개입과 규제가 없었다면 아파트 가격이 더 폭등했을 것이라고 자평한 적이 있습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지금의 하락은 정책의 성과여야 합니다. 성과라면 인내를 요구할 게 아니라 성과의 범위와 한계를 보고해야 합니다. 성과라고 주장하면서 고통은 인내로 돌리는 것은, 같은 정책의 두 면을 편의대로 나눠 갖는 일입니다.
정상화의 목표 수준을 먼저 제시하십시오. 조정이 어디서 멈출지, 그 과정에서 금융 부담이 한계를 넘는 가구에 어떤 완충을 댈지를 약속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내의 시간'이 희망 고문이 아니라 정책의 약속이 됩니다. 견디라고 말하는 쪽이 그 끝을 정하지 않으면, 견디라는 말 자체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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