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보증금을 받아 놓고 돌려주는 문은 산 곳으로만 열어 두는 것은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불편의 값을 소비자에게 넘기는 일이다광장
반납 문이 산 곳에만 열려 있는 보증금제는 감량이 아니라 불편의 값을 소비자에게 청구하는 일이다.
줄인 것이 아니라 넘긴 것입니다. 2026년 11월부터 전국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컵 한 개당 300원을 보증금으로 받아두고, 반납 조건을 채우면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환경을 위해 일회용품을 줄이겠다는 취지는 분명히 옳습니다. 하지만 반납의 문을 산 매장으로만 열어둔 채 소비자의 완벽한 컵 관리를 전제로 만든 이 제도는, 감량이 아니라 불편의 값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일일 뿐입니다.
제도 설계를 들여다보면 구조적 모순이 선명합니다. 반납은 전용 반납기가 설치된 산 매장이나 같은 브랜드의 매장으로 직접 돌아가야 하고, 길거리 쓰레기통에 버린 컵은 인정되지 않으며, 오염이나 훼손이 있으면 반납 자체가 거부될 수 있습니다. 이는 보증금이 아니라 사실상 담보 요구입니다. 국가와 기업이 컵 한 개의 관리 능력을 심사하고 있는 셈입니다. 소비자는 컵을 흘리지 않고 들고 다니다가 산 매장까지 되돌아가 반납기 앞에 줄을 서야 비로소 돈을 돌려받습니다. 환경 부담을 소비자 개인의 부담으로 환산해 전가하는 구조입니다.
부담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시간과 노력을 내어 반납 줄을 서고, 가맹점주는 반납기 설치와 운영 비용을 떠안으며, 미반납 컵 손실까지 고스란히 감당합니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환경 경영 이미지를 취하고, 개인 가게는 비용만 떠안는 형편입니다. 미반납 컵은 사라지지 않고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를 만든 쪽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줄이는 제도가 아니라 책임을 떠넘기는 제도입니다.
환경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정책의 책임 주체는 자신을 빼고, 소비자와 소상공인 사이에 부담을 던져놓은 뒤 관리 능력을 심사하고 있습니다. 제도의 성패를 회수율로 잰다면, 회수율을 끌어올리는 힘은 소비자의 성실함이 아니라 반납 거점의 밀도와 접근성입니다. 돈을 맡기듯 보증금을 받아 두고, 돌려받으려면 처음 산 창구로 되돌아오라고 명하는 설계는, 그 순서를 거꾸로 세운 것입니다.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소비자가 자기 일과를 쪼개어 매장까지 되돌아가 줄을 서야 한다면, 그것은 환경 보호가 아니라 소비자를 담보 제공자로 세운 징벌입니다. 수백 원짜리 컵 하나에 하루 일정을 잡히는 제도가 환경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버틸 이유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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