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위험 사업장의 첫 대책이 스스로 점검하라는 당부라면 그것은 예방이 아니라 책임의 방기다광장
참사 직후 첫 대책이 사업장 스스로의 점검에 의존한다면 안전은 성의에 맡겨진 것이다.
모민철 필자2026년 10월 19일화재 위험 사업장에 내놓은 첫 대책이 스스로 점검하라는 당부라면, 그것은 예방이 아니라 책임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고용노동부가 이달 19일부터 30일까지 화재·폭발 위험 사업장을 대상으로 자율점검 기간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부천 도장공장 화재로 소방관이 순직한 직후에 내놓은 대책의 첫 단추입니다. 이어서 11월 2일부터 13일까지 집중점검이 예정돼 있다고 노동부는 밝혔습니다.
문제는 순서입니다. 위험을 만드는 주체와 점검하는 주체가 같은 구조에서, 자율점검은 제도의 강제가 아니라 사업장의 성의에 안전을 맡기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습니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화재·폭발 사고로 숨진 산업재해 사망자는 3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에 가깝습니다. 전체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줄었는데 화재·폭발로 죽은 노동자만 늘었습니다. 이 유형의 위험은 사업장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이미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첫 대책이 자율점검입니다.
자율점검을 먼저 두고 집중점검을 뒤에 배치하면, 사업장은 외부의 눈이 들어오기 전에 먼저 살펴봤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사전 예방이 아니라 사업장에 명분을 쥐여주는 순서입니다. 점검 항목과 결과가 공개되지 않고 노동자가 점검에 참여하지 못하면, 자율점검은 서류를 채우는 형식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렇게 모든 절차가 사업장 안에서 닫힙니다. 외부의 눈이 닿기 전에 서류는 정리됩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폭발·화재로 7명의 사상자가 났고, 같은 사업장에서 또 화재로 5명이 숨졌습니다. 쿠팡은 이천 물류센터 화재, 인천 물류센터 화재를 겪었고, 화일약품은 2022년 공장 폭발로 근로자 1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다쳤습니다. 한화는 위험물 취급 공정을 다시 살핀다고 했고, 쿠팡은 화재 책임을 부인하며 화재 발생 공간이 자신들 관리 구역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해명, 부인, 재해명, 침묵.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사업장이 보여준 궤적입니다.
참사 직후에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자율이 아니라 외부의 눈입니다. 위험을 아는 노동자가 점검에 참여하고, 점검 결과가 공개되며, 위험요소를 지적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는 구조 없이 자율점검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소방 점검은 화재 발생 전에 이루어져야 하고, 산단의 안전관리를 사업장 자율에 맡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 감독의 실효를 갖추어야 합니다. 자율점검 기간을 운영하겠다는 발표 자체보다, 그 자율이 닫힌 공간 안에서 이뤄질지 열린 구조 아래에서 이뤄질지가 대책의 성패를 가립니다.
부천 화재로 순직한 소방관의 빈소에 조문을 다녀온 이기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모습이 보도됐습니다. 조문은 의무가 아닙니다. 하지만 참사의 무게를 정치가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에 내놓는 대책의 첫 단어가 '자율'이어서는 안 됩니다. 노동자가 죽고 소방관이 죽은 뒤에 사업장에 스스로 점검하라고 맡기는 것은, 국가가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한 발 물러서는 일입니다.
서류 한 장이 불을 끄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숨진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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