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아래 글에 대한 반박입니다
개헌의 창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가 연다 — '유일한 기회'론의 착각개헌의 신뢰는 창이 닫히기 전에 절차로 쌓인다광장
신뢰는 개헌의 창 밖에서 완성되는 선결 조건이 아니라, 열린 창 안에서 절차를 돌린 결과물이다. 무기한의 신중함은 신중함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흐르는 길이다.
개헌은 신뢰가 쌓인 뒤에 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속도보다 신뢰가 먼저라는 주장이고, 지금이 유일한 기회라는 말은 착각이라는 지적입니다. 신중하게 들리는 이 말, 그러나 한 가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신뢰가 어디서 오는지를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헌의 창을 여는 것은 신뢰가 아니라 정치 구도와 국정 여건입니다. 국회에서 의석 분포가 어떻게 바뀌는지, 어떤 국정 이슈가 한가운데 놓이는지, 선거 일정이 어떻게 짜이는지는 어느 쪽도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조건입니다. 이 조건들이 맞물릴 때 창이 열리는데, 그 열린 시기를 기다린다고 조건이 더 좋아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기다리는 동안 구도는 흐트러지고 여건은 사라지게 됩니다. 창이 열렸는지를 가만히 앉아서 확인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여기서 닭과 달걀의 모순이 생깁니다. 신뢰를 먼저 갖추라고 합니까? 그런데 그 신뢰를 만드는 장치가 바로 공론화와 심의와 의결입니다. 국민이 개헌 안건을 두고 토론하고, 전문가가 따지고, 국회가 심의하는 그 절차 자체가 신뢰를 낳습니다. 절차를 돌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신뢰부터 완성해 오라는 요구는, 달걀을 낳으려면 닭이 있어야 하는데 그 닭은 달걀에서 깨어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셈입니다. 신뢰는 창 밖에서 미리 만들어 두는 선결 조건이 아닙니다. 열린 창 안에서 절차를 돌린 결과물인 것입니다.
시간표를 정하는 것과 급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다릅니다. 기한을 정하는 일은 절차의 일부이지 절차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공론화에 몇 달을 쓸지, 심의에 몇 주를 배정할지 정하는 작업, 그것이 바로 절차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반면 기한 없는 신중함은 신중함이라는 이름을 붙인 무관심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언제까지 토론할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누구도 본론에 들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두름이 아니라 순서입니다. 창이 열려 있는 동안 공론화를 시작하고, 심의를 거치고, 의결에 이르는 과정을 돌려야 국민이 무엇을 바꾸는지 따지고 심판할 시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경험이 쌓여 신뢰가 됩니다. 신뢰가 창을 연다고 말하면, 우리는 창 밖에서 영원히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창 밖에서 신뢰를 기다리는 개헌이란, 열리지 않는 창을 기다리는 것일 뿐입니다.
Rebuttal
이 논점에 반박하세요
이 지면의 최고 찬사는 박수가 아니라 반박입니다. 어긋나는 논점은 침묵하지 말고 글로 내놓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