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를 다 받고 나서야 값을 보여주는 것은 의료비를 받는 일이 아니라 비교할 기회를 먼저 없애는 일이다광장
비급여 진료비는 왜 퇴원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지, 사전고지 없는 동의가 무엇을 가리는지 묻는다.
치료를 다 받고 나서야 값을 보여주는 것은 의료비를 청구하는 일이 아니라 비교할 기회를 먼저 없애는 일입니다. 건강보험이 덮지 않는 비급여 항목은 환자가 전액을 부담해야 하는데, 병원이 시술 전에 총액을 알려주지 않으니 환자는 값을 모른 채 치료를 시작하고 퇴원할 때까지 찔러보지 못합니다. 치료를 끝낸 뒤 계산서로 금액을 처음 확인하는 구조, 그것이 지금의 비급여 진료 현장입니다.
문제는 개별 병원의 양심이 아니라 가격 정보가 흐르지 않는 구조입니다. 다른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값을 보고 비교한 뒤 지갑을 여는 것이지요. 의료 시장에서는 환자가 값을 보기 전에 몸을 맡겨야 하고, 맡긴 뒤에는 비교할 의미가 사라지고 맙니다. 수술 직전에 서명하는 동의서에 항목별 값이 빠져 있고, 건강보험이 덮지 않는 MRI 촬영이나 인공관절, 분만 같은 항목은 병원마다 값 차이가 나는데도 환자가 미리 비교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시술 전에는 알 권리가 없고, 퇴원 후에는 거를 권리가 없습니다. 이 구조에서 경쟁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치료 도중 항목이 늘어나 값이 달라져도 병원은 다시 고지하지 않습니다. 환자는 퇴원 후 계산서로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됩니다. 식당에서 주문한 적 없는 요리가 계산서에 올라와도 이미 먹은 뒤라 거절할 수 없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병원 계산서는 그 식당보다 더 큰 금액을 요구하면서도, 왜 그 항목이 추가됐는지 미리 설명하지 않습니다. 퇴원실에서 처음 보는 영수증 앞에서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카드를 꺼내는 것뿐입니다. 참으로 정직한 청구 방식이지요. 값을 알면 도망갈까 봐 치료가 끝난 뒤에야 금액을 보여주니, 거부는커녕 이의제기할 틈조차 주지 않습니다.
가격을 사전에 고지하면 병원 간 경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환자가 같은 시술의 값을 비교할 수 있게 되면 병원은 부당하게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 없고, 품질과 가격의 균형을 스스로 잡아야 합니다. 규제가 아니라 시장의 기본 전제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치료 시작 전에 항목과 총액을 알리고 값이 달라질 때는 다시 고지하게 하는 규칙, 그것이 환자의 권리를 찾아주고 의료 시장에 경쟁을 밀어 넣는 장치여야 합니다. 값을 모른 채 서명한 동의서가 유효하다면 그 서명은 동의가 아니라 포로의 항복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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