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아래 글에 대한 반박입니다
'연임 없다' 못 박은 김민석이 개헌 속도전부터 서두르는 이상한 준비개헌 지연이야말로 개혁을 죽인다 — 속도전을 탓할 때가 아니다광장
합의의 속도를 기다리던 개혁은 왜 좌초했는가. 개헌 속도를 탓하지 말라는 반박.
개혁의 역사는 지연의 역사였습니다. 공물 수납의 폐단을 짚은 자가 있었고, 그 개혁이 전국에 미치기까지 100년이 걸렸습니다. 그 100년의 공백 동안 농민은 수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속도를 탓하는 자마다 "합의의 속도"를 말합니다. 그러나 합의가 도래한 적이 있었습니까. 유희춘과 이이가 짚고 김육이 집요하게 추진한 대동법은, 공납의 이권을 쥔 수령과 중앙 관료의 반대에 부딪혀 선조 대에는 좌초되고 말았습니다. 광해군 대인 1608년에야 경기도에서 첫 시행이 이루어졌고, 숙종 대에 이르러서야 전국 시행이 완료되었습니다. 100년의 지연이 낳은 것은 농민 수탈이었고, 그 불씨는 결국 이괄의 난으로 이어졌습니다. 지연이 곧 개혁을 죽이는 것입니다.
오늘도 같은 국면입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가 개헌추진단을 출범시키며 내년 상반기 국민투표 시간표를 내놓자, 정점식 원내대표는 "이 정부서 개헌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합의를 기다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논의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대동법을 100년 지연시킨 수령들과 구조가 다릅니까. 이권을 쥔 자가 개혁을 거부하고, 그 거부를 "신중함"으로 포장하는 구조가 오늘도 반복되고 있는 셈입니다.
연임 서약과 개헌 추진이 모순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매력적인 논리입니다. 이준석은 현직 대통령 연임 허용 개헌에 반대가 64.7%라는 여론조사를 공개하며, 연임 적용 배제를 먼저 못 박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인정할 점이 있습니다. 권력 연장 수단으로 의심받는 순간 국민 동의를 잃는다는 지적 자체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임기 초의 여세를 몰아 개헌에 착수하는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유일한 창인 것입니다. 대통령 임기가 흐를수록 레임덕은 깊어지고 야당의 거부감은 커지기 마련입니다. 지금 밀어붙이지 않으면, 합의를 기다리다 임기가 끝나는 구조일 뿐입니다.
이재명은 선관위 개혁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필요성을 줄곧 언급해 왔습니다. 여야 의견이 일치한다면 선거관리위원회에 관한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연임 개헌 카드를 꺼냈다가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모순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모순을 들어 속도전 자체를 멈추라고 하면, 남는 것은 100년 전 농민 수탈과 같은 구조적 적폠일 뿐입니다. 이재명이 제안한 선관위 원포인트 개헌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과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논의에서도 그 필요성이 거듭 제기된 것입니다. 천하람 의원도 투표 제도와 선관위 개혁 과제 토론회에서 성급한 개헌론으로 물타기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짚었습니다. 속도전을 탓하는 논리가 오히려 물타기로 돌아오는 셈입니다.
개헌의 완성도를 이유로 시간표를 깎아내리는 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완성도를 높이자는 명분은 늘 타당합니다. 그러나 합의가 오지 않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완성도만 들먹이면, 개혁은 영영 좌초하게 될 것입니다. "합의가 절대 오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합의를 기다린 개혁이 성공한 전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2018년 개헌 추진이 실패했고, 역대 정부의 개헌 시도가 "합의의 속도"를 기다리다 좌초한 흔적은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속도전은 조급함이 아닙니다. 유일한 창입니다. 대동법이 100년 지연 끝에 농민 수탈을 낳았듯, 선관위 개혁을 지연시키면 국민참정권 침해의 적폠는 그대로 남게 될 것입니다. 대동법이 처음 시행되던 해의 기록은 오늘의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번거로운 폐단을 합쳐 하나로 통일하였으니, 그 이름을 대동이라 한다." 합쳐서 하나가 되는 개혁을, 합의를 핑계로 100년 미루겠다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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