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파병 없다' 선언과 '전쟁 개입' 발언 사이 — 호르무즈 혼선은 국익을 갉아먹는다광장
'전투 파병 없다'와 '전쟁 개입' 발언 사이. 안보 혼선이 국익을 갉아먹는 구조를 본다.
광화문 감사의 정원에서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던 바로 그 주간에, 한쪽에서는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는 선언이 나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파병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습니다. 한강을 경계로 적을 우리 땅에 들였다 여기며 군을 돌려버린 옛 실책이 오늘 이 국면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인지, 그 경계선이 대체 어디인지를 두고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안보 발언이 하루 만에 서로 다른 결론을 향해 갈 때, 그것은 언론의 왜곡도 소통의 문제도 아닙니다. 누가, 어느 시점에, 어떤 절차로 파병을 결정하는가라는 제도의 빈칸이 만들어낸 필연적 혼선인 셈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전쟁 개입 파병은 없다고 못 박은 뒤에도, 같은 진영에서 송영길 의원은 "이라크 전쟁 때보다 명분이 없다"며 반대하고, 이기헌·부승찬·김병주 의원은 신중론을 펴고 있습니다. 검토, 반대, 신중, 선 긋기. 한 목소리여야 할 집권 진영의 입에서 파병 하나를 두고 네 가지 입장이 튀어나오는 것은, 결정 권한이 제대로 묶여 있지 않은 채 대통령 한 사람의 호불호에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압박과 이란의 엄포 사이에서 실용외교를 운운할 때가 아닙니다. 결정의 방식 자체가 문제인 것입니다.
선조 26년, 왜적이 도강하자 권율의 군마마저 빼내어 돌아갔습니다. 군율로 논하면 죄를 받아야 할 일이었지만, 조정은 경략의 시비와 제독의 거취를 두고 실랑이만 벌이다 끝내 우리 땅을 내주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호르무즈 해협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때와 다르겠습니까. 파병을 하겠다는 것인지, 선을 긋겠다는 것인지, 검토하겠다는 것인지 — 정례 보고 한 번 없이, 국회 논의 한 번 없이,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 한 줄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구조가 바로 그 옛날 군율 없는 조정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없었다, 국회에 사전 보고하는 절차가. 해외 파병은 군 병력을 외국 영토에 투입하는 국가적 행위인데, 그 결정이 집행된 뒤에야 국회에 보고하거나 아예 보고조차 없는 것이 지금의 관행입니다. 이번 혼선에서 드러난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정부가 파병 방안을 검토하면서도 국회에 정례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논란의 씨앗이었고, 결정이 난 후에야 여론이 알게 되는 사후 통보형 의사결정이 매번 같은 혼란을 되풀이해 왔습니다. 동맹의 신뢰가 흔들리고, 국제 유가가 출렁이며, 국민의 생활물가가 요동치는 파병 논의를 이렇게 통제 없이 몰아붙여도 되겠습니까.
해외 파병 논의의 국회 사전 보고를 법제화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전쟁 개입 파병이 없다고 선언하든, 미국 주도 해양자유연합과 연계한 파병을 검토하든, 그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국회에 보고하고 논의하는 절차를 법으로 못 박아야 합니다. 선조실록은 그 파병의 실책을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적이 도강하는 즉시 파병한 것은 한강을 경계로 하여 우리 땅으로 여기는 것인가." 적이 강을 건너는데 군을 빼버린 자를 군율로 물어야 할 것인데, 그 물을 자리조차 없다면 이 나라의 사령탑은 누가 지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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