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아래 글에 대한 반박입니다
'전투 파병 없다' 선언과 '전쟁 개입' 발언 사이 — 호르무즈 혼선은 국익을 갉아먹는다'전투 파병 없다'와 '전쟁 개입'은 모순이 아니다광장
파병 여부와 개입 수위는 별개의 질문이다. 모순이 아닌 것을 모순으로 읽는 프레임이 먼저 혼선을 만든다.
적이 도강하는 판국에 조정이 논하던 그 자리에서조차, 모든 질문이 하나의 답으로 정리되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시끄러운 비판이 가장 기본적인 질문 구분을 놓친 적이 또 있습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선언한 뒤에도, 정부가 미국 주도 해양자유연합과 연계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마치 두 발언이 하나의 질문에 대한 충돌하는 답인 양 들고 일어나는 목소리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모민철 씨를 비롯한 평론가들이 "선언과 발언 사이의 불일치가 혼선을 낳고 국익을 갉아먹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파병 여부를 묻는 질문과 개입 수위를 묻는 질문은 애초에 다른 층위입니다. 전투 병력을 보내지 않겠다는 선언이 곧 어떤 형태의 해역 지원이나 후방 임무도 거부하는 뜻으로 읽히는 것은, 발언자의 모순이 아니라 듣는 쪽의 언어 규율이 무너진 결과입니다.
임진왜란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왜적이 도강하는 판국에 조정은 한자리에서 파병을 논하고, 군량 조달을 따지고, 경성과 진주의 방어를 동시에 의논해야 했습니다. 그때도 권율이 파병하여 돌아간 일을 두고 군율로 논하면 죄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한강을 경계로 우리 땅으로 여기는 것이냐는 추궁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조정이 이 여러 겹의 질문을 저울질하며 시간을 벌고 폭을 남겨둔 것은 우유부단이 아니라, 살아남는 나라의 계산이었습니다. 오늘날 정부가 파병은 거부하되 해역 지원의 폭은 말하지 않는 것도 같은 계산입니다. 전략적 모호성은 부주의가 아니라 외교가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입니다. 적이 도강하는 즉시 모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라는 요구는 협상의 기본을 모르는 것입니다.
파병은 파병이고, 개입은 개입이고, 지원은 지원입니다. 이 세 단어를 하나로 뭉뚱그려 놓고 모순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외과수술을 한다고 해서 환자를 죽이겠다는 뜻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6·25 전쟁 76주년 기념식에서 전쟁의 비극을 강조했던 것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실용외교의 균형을 잡으려 하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전쟁에 직접 관여하는 파병은 없되, 해상 교통로 안보에 기여하는 방안은 검토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층위가 다른 두 정책의 병행입니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 안에서도 이 질문 구분이 서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송영길 의원은 이라크 전쟁 때보다 명분이 없다며 파병에 반대했고, 이기헌 의원과 부승찬 의원, 김병주 의원은 신중론을 폈습니다. 당 안에서조차 파병 자체의 찬반이 아니라 개입 수위에 대한 우려가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판에 정부가 모든 시나리오를 즉석에서 확정해 발표하면 혼선은 오히려 커집니다. 단정이 사정 변화로 바뀔 때 생기는 진짜 혼선을 피하려면, 모호하게 말해야 할 자리에서 모호하게 말하는 것이 책임 있는 외교입니다.
모민철 씨의 논지처럼 발언의 정합성을 묻기 전에, 그 발언이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인지 가리는 언어 규율이 먼저 서야 합니다. 서로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을 충돌하는 답으로 읽어 버리는 습관이야말로 혼선을 만드는 진짜 프레임입니다. 선조실록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경략의 시비와 제독의 거취에 대해서는 지금 굳이 말할 것이 없고, 다만 우리 나라에서 책응하는 일에 대해서만 말해서 조금의 보탬이라." 오늘 호르무즈 해협 앞에서도, 정부의 전략적 판단을 즉각적 단정으로 몰아가는 대신 우리가 실질적으로 책응할 일에만 무게를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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