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을 받지 않는 것은 결제 방식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돈을 쓸 권리를 카드가 있는 사람에게만 남기는 일이다광장
카드 수수료와 현금 관리의 부담은 결제 수단을 일방적으로 거부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현금을 거부하는 매장은 결제 수단을 하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쓸 권리를 특정 결제 수단을 가진 사람에게만 남겨두는 일입니다. 카드 단말기와 간편결제 QR코드만 내건 무인 매장이나 소형 점포를 심심치 않게 마주하게 된 것이 최근의 일입니다. 매장 측은 현금 취급에 따른 오차와 관리 부담, 그리고 교환 시간을 이유로 들며 이를 합리적 운영 선택으로 정당화하려 하지만, 법정통화를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걷어들이는 것은 그 사정이 아무리 그럴듯하더라도 공공의 결제 질서를 사적 편의에 맞춰 재단하려는 시도일 뿐입니다.
간편결제가 일상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온라인 결제에서 플랫폼 기반 간편결제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QR 결제 인프라가 빠르게 확대된다는 소식이 잇따르는 것만 봐도 결제 생태계가 얼마나 빠르게 디지털로 재편되는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이 흐름이 현금을 쓰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밀어내도 좋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디지털 결제가 아무리 넓어져도, 그 인프라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매장이 현금 관리 부담을 내세우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순이 드러납니다. 카드와 간편결제에 붙는 수수료 역시 만만치 않은 비용인데, 이를 감내하면서 유독 현금 관리 비용만 면제받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카드 수수료는 영업비용으로 수용하면서 현금 관리 비용만 부담이라고 말하는 태도는, 비용의 성격을 따지기도 전에 받기 편한 돈과 받기 불편한 돈을 가른 결과일 뿐입니다. 수수료 체계 개선이나 관리 부담 지원은 제도가 풀어갈 문제이지, 매장이 현금 수용 의무를 거둬들이는 명분이 될 수 없습니다.
현금은 누구나 지갑에 넣고 다닐 수 있는 마지막 공통 결제 수단입니다. 어린이이거나 고령이거나, 혹은 일시적으로 카드를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현금 거부 매장의 문 앞에서 되돌아서야 한다는 것은, 그 매장이 특정 결제 인프라를 갖춘 사람만을 고객으로 받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겠습니까. 결제 수단을 강제할 때 발생하는 비용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 매장을 찾은 소비자의 선택권에서 곧바로 지불됩니다. 소비자는 더 나은 결제 수단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결제 수단 안에서만 소비하도록 내몰리는 셈입니다.
법정통화는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입니다. 매장이 현금을 받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 의무를 임의로 벗어나는 것을 두고볼 일이 아닙니다. 수수료와 관리 부담은 요금 체계와 정부 지원으로 풀되, 현금을 쓸 권리를 매장이 걷어내는 일은 제도가 개입해 막아야 합니다. 현금 한 장 받지 않겠다는 매장이 가장 먼저 잃는 것은 고객이 아니라, 돈을 받겠다는 본분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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