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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시장 안정이라는 말로 먼저 꺼내는 것은 세금의 원칙을 흥정거리로 만드는 일이다광장

과세 유예를 먼저 꺼내는 순서 자체가 세율이 아니라 원칙의 문제가 된다.

김인환 필자2026년 10월 22일

세금의 원칙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묻는 것이지, 시장이 불안하다고 해서 그 원칙을 유예의 카드로 깎거나 붙이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가상자산 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 시행이 계속 미뤄지는 가운데,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가상자산 과세 문제도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조국 등이 당내에서 "불평등 해소 유예"라며 반발하고 나섰다는 소식도 같은 맥락에서 전해집니다. 과세 원칙을 세우기도 전에 유예부터 꺼내 드는 바람에,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묻는 대원칙이 흥정거리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세금은 법률로 정해진 의무이지 시장 기분에 맞춰 조율되는 협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흘러나오는 논의는 순서가 뒤바뀌어 있습니다. 시장이 불안정하니 세금을 미루자는 논리가 먼저 나오고, 그 뒤에야 과세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근거가 따라붙는 구조입니다. 소득을 얻은 사람이 세금을 내는 것이 원칙이라면, 시행을 미루자는 쪽이 먼저 왜 미뤄야 하는지를 증명해야 합니다. 시장이 불안하다는 말만으로는 그 증명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유예가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제도 정비 없이 과세 유예만 먼저 꺼내면, 자산 규모가 큰 투자자에게 실질적 이득이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과세를 미루는 동안 소득을 올린 투자자가 세금 부담 없이 수익을 거둬들이는 구조가 되기 때문입니다. 조국이 "불평등 해소 유예"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 지점을 찌르는 것이지요. 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유예를 들고 나오는 쪽은, 그 유예가 과세 부담을 져야 할 사람의 짐을 덜어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직면해야 합니다. 박지원, 김영배 등이 김민석 대표의 리더십에 "나사가 빠졌다"고 지적하며 당내 이견이 확산 중이라는 보도도, 한 당의 대표가 원칙 없이 유예부터 꺼냈을 때 내부에서조차 혼선이 빚어진다는 방증입니다.

그렇다면 유예를 논하려면 무엇이 먼저 정비되어야 합니까. 거래소의 거래 자료를 과세 당국이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는 정보 연계 체계가 서 있어야 하고, 기준가 산정 방식에 대한 합의가 마련되어야 하며, 유예에 일몰 시한이 명확히 붙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예만 꺼내는 것은, 과세 기반을 다질 시간을 주겠다기보다 과세 자체를 희석하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일몰 시한 없는 유예는 사실상 면제와 다를 바 없고, 기술적 기반 정비 없는 유예는 시행을 미루는 명분만 남길 뿐 제도의 완성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유예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과세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기반부터 차곡차곡 쌓겠다는 분명한 설계입니다. 시장 안정이라는 말로 유예를 먼저 꺼내는 것은, 세금의 원칙을 흥정거리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원칙 없는 유예는 유예가 아니라 면죄부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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