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환수를 시간표 없이 선언으로 먼저 꺼내 드는 것은 자주국방이 아니라 순서를 앞당기는 일이다광장
조기 환수 선언의 무게는 한미 시간표와 검증 가능한 조건이 함께할 때만 자주국방이 된다는 논지.
전작권 환수 선언이 안보의 무게를 더하는 순간, 그 무게는 오히려 가벼워집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전작권은 전환이 아닌 환수이며 반드시 조기에 환수해야 한다"고 밝히며 안보 의제를 직접 꺼내 들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를 따르면 대통령은 한미 정보당국 간 불협화음이 알려진 가운데서도 이 발언을 했고,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설득하겠다는 방침도 전해졌습니다.
문제는 선언의 순서입니다. 전작권 환수의 실질은 한미가 함께 읽는 시간표와 조건이 정하는데, 선언이 그 앞에 서면 주권 회복이라는 무게를 싣기는커녕 협상에서 꺼낼 카드를 스스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됩니다. 한미동맹 비용 분담 논의가 격화되는 국면에서 조기 환수를 먼저 말하는 것은 지렛대를 쥐는 것이 아니라 지렛대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상대가 조건을 제시하기도 전에 우리 쪽 의사를 최대치로 밝혔는데도 남은 협상의 폭이 넓어질 까닭이 있겠습니까.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이 전작권 전환 조건이 변했다고 말해 한국 정부의 반발을 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런슨의 발언에 반발하면서도 조기 환수라는 낱말을 먼저 꺼내는 것은, 조건의 변화를 우려하면서 스스로 조건보다 선언을 앞세우는 모순입니다. 한미 정보당국 간 불협화음이 보도되는 상황에서 지휘·정보 역량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데, 그 균열을 메우지 않은 채 환수 시점만 앞당기겠다고 하면 군 사령부는 물론 국민도 순서를 따라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작권 환수로 자주국방에 마침표'를 '2030년대 핵잠수함 건조'와 함께 말했습니다. 두 과제를 한 문장에 묶으면 재원과 역량 점검 없는 마침표 선언이 되기 쉽습니다. 핵잠수함 건조에 드는 예산 규모, 기술 확보 경로, 조선업 인프라 점검이라는 변수가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침표를 말하면, 선언은 구호가 되고 구호는 시한표가 되며 시한표는 협상의 지렛대를 잃게 하기 마련입니다. 전작권 환수와 핵잠수함 건조를 한 문장에 올리는 순간, 두 과제는 서로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빈틈을 드러내는 짝이 됩니다.
요구는 분명합니다. 조기라는 낱말보다 먼저 검증 가능한 조건을 밝혀야 합니다. 한미가 합의한 시간표, 한국군의 독자적 지휘·정보 역량 확보 상태,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예산과 편제 정비 정도를 국민이 따라갈 수 있는 지표로 내놓으십시오. 선언이 아니라 순서가 안보를 만듭니다. 카드를 먼저 보여 주는 사람이 협상에서 이기는 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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