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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파병 없다'와 '전쟁 개입'은 모순이 아니다차윤아

전략적 모호성이려면 통제가 먼저다광장

모호성은 통제될 때만 자산이 된다. 발언이 새어나온 뒤 붙이는 해명은 전략이 아니라 사후 포장이다.

오민석2026년 9월 21일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말이 외교의 정상 운영 방식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파병 여부와 개입 수위는 별개의 질문이며, 큰 분쟁 지역 앞에서 모든 시나리오를 즉석에서 확정하지 않는 것이 부주의가 아니라 외교의 기본이라는 논리입니다. 이 주장 자체는 일견 설득력이 있습니다. 국가가 모든 카드를 앞면으로 드러내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모호성이 전략이 되려면 그것이 사전에 설계된 계획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계획 없이 발언만 튀어나오는 상황에서 모호성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혼선을 포장하는 행위인 셈입니다.

모호성은 통제될 때만 자산입니다. 상대가 우리의 다음 수를 읽지 못할 때 모호성은 가치를 가집니다. 그런데 통제 없는 모호성은 상대에게 혼란이 아니라 기회를 줍니다. 우리 정부의 다음 수를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부가 자기 수를 모른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관련국이 파악하는 것은 모호한 전략이 아니라 말이 오가는 정부라는 인상입니다. 그것이 전략인지 혼란인지를 상대가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구분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통제 장치입니다.

통제 없는 모호성은 동맹에게 불신으로 읽힙니다. 동맹이 기대하는 것은 명확한 약속이거나, 약속이 불가능한 영역에서는 일관된 침묵입니다. 그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발언들이 흘러나오면, 동맹은 그것을 전략적 침묵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정부 내부 조율이 안 되어 새어나가는 소음으로 읽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이 불안해하는 것은 정부가 파병 여부를 밝히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까. 누가 정부의 입장인지, 어느 발언이 공식인지 알 수 없을 때 불안이 생기는 것입니다. 모호성이 불안을 낳는 것이 아니라, 통제 없는 발언이 불안을 낳는 것입니다.

문제는 모호성 자체가 아닙니다. 모호성을 만들어 주는 통제 장치의 유무입니다. 발표 절차가 정해져 있는지, 대변 창구가 단일화되어 있는지, 사전 브리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것들이 있으면 모호성은 전략입니다. 이것들이 없으면 모호성은 사고일 뿐입니다. 발언이 먼저 나오고 해명이 뒤따르는 순서라면, 그것은 계획된 모호성이 아니라 계획되지 않은 발언을 모호성이라는 말로 덮는 행위입니다. 모호성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정부가 자신의 발언을 해명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해명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그 발언이 계획의 일부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파병 여부와 개입 수위가 별개의 질문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별개성이 곧 모호성의 정당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별개의 질문에 대해 정부가 내놓는 답이 서로 충돌한다면, 그것은 질문을 정교하게 나눈 것이 아니라 답을 조율하지 못한 것입니다. 질문의 구분이 전략적 모호성의 근거가 되려면, 각 질문에 대한 답이 사전에 정해진 궤도 안에서만 나와야 합니다. 궤도 없이 나오는 답은 구분이 아니라 혼선입니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말을 쓰려면, 그것이 계획임을 먼저 보여야 합니다. 통제의 증거 없는 모호성은 전략이 아닙니다. 사후 포장일 뿐입니다. 정부가 해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한, 그 모호성은 아무도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모호성을 전략이라 부르려면, 그것은 침묵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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