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안 드는 판결이 나오면 법을 고쳐 심판을 다시 세우겠다는 것은 입법이 아니라 판결을 들었다 무효로 만드는 일이다광장
판결 직후 여당이 법원 오염론과 공선법 개정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사법부를 향한 압력이다.
백영우 필자2026년 11월 5일마음에 안 드는 판결이 나오면 법을 고쳐 심판을 다시 세우겠다는 것은 입법이 아니라, 이미 내려진 판결을 들어 무효로 만드는 일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오세훈의 2심 무죄 판결 직후 '오세훈 항소심 판결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으로 전문가 좌담회를 열고 법원 오염과 공직선거법 개정을 동시에 거론했습니다. 판결이 나오자마자 판사와 법원 제도를 향한 입법 논의가 움직이기 시작한 셈이지요.
제도를 바로잡겠다는 명분 자체는 논의할 가치가 있습니다. 공선법 개정이든 법원 인사 검증이든, 특정 사안과 무관하게 장기적 관점에서 설계한다면 제도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지요. 문제는 그 논의가 판결 직후에, 판결에 불복하는 맥락에서, 판사를 겨냥하며 시작됐다는 사실입니다.
서영교 위원장은 무죄를 선고한 구회근 판사를 향해 '법원 오염'이라는 표현을 쓰고 조희대 대법원장까지 '수상하다'고 거론했습니다. '오세훈 항소심 판결의 문제점'이라는 제목 아래 열린 좌담회에서 판사 개인과 대법원장이 동시에 겨냥됐으니, 이는 제도 점검이 아니라 판결을 낸 사람에게 압력을 가하겠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박주민 의원이 법을 피해 간 후보는 안전하냐는 취지로 던진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판결 결과에 불만이 있으면 그 불만은 상급 심리라는 절차 안에서 풀어야 할 문제인데, 그 절차를 거르고 판사와 제도를 향해 직접 압박하는 구조로 바꿔버린 겁니다.
참 일관된 정치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사법부의 독립을 외치던 입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 나오자 곧바로 판사를 오염이라 부르고 대법원장을 수상하다 이름하는 쪽으로 돌아섰으니 말입니다. 그때 법관의 독립을 지키겠다던 말과 지금 판사를 겨냥하는 행동 사이에 남아 있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승부욱뿐입니다.
이 일련의 움직임은 한 단어로 요약됩니다. 판결 무효화입니다. 판결에 불만이 나오면 공선법을 고쳐 그 판결의 효과를 없애고, 판사를 겨냥해 다음 판결에 영향을 주고, 대법원장을 국정조사라는 압박 도구로 끌어들이는 구조가 결국 하는 일은 심판을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변호사단체들 역시 여당 주도 조희대 국정조사의 목적을 우려하며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사법부 압박이라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동시에 나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공선법 개정과 법원 인사 검증은 그 자체로 제도 사안입니다. 하지만 특정 판결에 대한 불복과 묶이는 순간, 제도 개혁이 아니라 보복으로 읽히게 됩니다. 그래서 요구는 분명합니다. 판결 불만은 상급 심리라는 절차 안에서 풀고, 공선법 개정 논의는 특정 판결과 시기를 분리해 별도로 다뤄야 합니다. 제도를 고치겠다면 판결이 난 뒤가 아니라 판결과 무관한 시점에서, 특정 판사를 겨냥하는 말 없이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법을 고쳐 판결을 뒤집는 길을 한 번 터놓으면, 다음에 그 법의 칼날이 누구를 향할지 아무도 모르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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